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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블로섬
새벽부터 과원에서 오디 따고 주문받고 택배 싸고 배달하고.. 복숭아 봉지 씌우고 .. 저녁에는 작업대에 밀려든 액세서리들 만들고 밤마다 어미 몫, 아내 몫의 가사일 하고.. 6월은 하루 24시가 모자라 몸이 세 개 즘으로 늘여 분담 나누고픈 생활의 연속.. 가끔 내가 숨은 쉬고 있는가.. 확인하게 되는... 오늘도 여전히 그런 하루였네요!! 하지만 내일은 오디 따기 쉬어 가겠어요. 지금 창 밖에는 비가 내리는 수준을 넘어 퍼붓고 있으니까요..^0^ 방금 내일 배달해야 하는 여러 곳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비 내려서 내일 새벽 오디 따기 없습니다. 날짜를 하루 이틀씩 미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앗싸 ~~ 더도 덜도 말고 딱 2시간만 더 자야지~~~~ 23.06.10일 저녁
순천중학교와 광주고등학교 졸업 1961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졸업했으며, 1974년 서울대학학교 신문대학원에서 신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외국인 선교사에게 영어를 배우게 되었다. 대학 시절 영어웅변대회에서 1등을 하여 이승만대통령에게 표창장을 받았다. 대학 졸업 후 미군을 상대로 성경책과 비행기표를 판매하는 개인사업을 하다가, 1968년 1월 한국 브리태니커를 설립.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현대적인 세일즈 기법을 도입하고 마케팅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4년 다시 샘이깊은물을 창간했다. 잡지와 책을 통해 한글의 글꼴과 쓰임을 다시 디자인했으며, 판소리 음반, 칠첩반상기 제작, 민중자서전 출판 등의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의 토박이 문화를 대중에게 소개했다. 2..
수오당은 김무규 명인의 생가이며 영화 ‘서편제’의 촬영지로 잘 알려져 있다. 수오당은 전남 구례군 원래 구례읍 산성리 지리산 자락에 있었다. 이곳이 대중에게 알려진 때는 영화 ‘서편제’에 등장한 뒤부터다. 잠시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떠돌이 소리꾼 부녀, 유봉(김명곤)과 송화(오정해)는 어느 날 남도 땅 한옥에 잠시 몸을 의탁한다. 그곳 사랑채에서 유봉은 눈먼 송화의 머리를 정성스레 빗겨준다. 그런데 바로 옆 누마루에서 거문고 소리가 들려온다. 이에 맞춰 유봉이 구음(口音)으로 노래한다. 처연하기도 하고 비장하기도 하다. 영화에서 거문고를 연주한 사람은 인간문화재이자 단소·거문고 명인이던 김무규, 촬영 장소는 구례 김무규 가옥의 사랑채 누마루였다. 임권택 감옥이 김무규의 집에서 영화의 한 장면을 찍은..
장뚱어탕을 맛보려고 저녁 식사 시간 맞춰 낙안에 예약된 해밀민박집에 도착했다. 모든 끼니를 현지 음식으로 사 먹으려 했으니 팬션이 필요 없어 민박으로 저렴한 선택을 했다. 어느 블로그 추천글 보고 민박을 예약하려 전화 통화 했을 때와 예약된 날을 일주일 미루는 통화 할때처럼 민박집 사장님은 여전히 매우 친절하셨다. 처음만남이지만 이웃집 아저씨 같은 느낌의 사장님께 낙안에서 장뚱어탕 맛나게 하는 집 추천해 달라 했었고 소개받아 찾아간 식당은 "사또밥상" 짱뚱어탕과 꼬막전 꼬막무침 그리고 삶은꼬막이 한상에 올려지는 사또 정식은 우리 일행들에게 아무 불만 없는 매우 흡족한 식사가 되었다. 1인 22.000원 x 6 술 마시는 가족이 없지만 소주 한병(5.000)을 주문하여 여섯잔의 건배잔을 나눔 했었고 나는 ..
두 번째 행선지 낙안읍성에 도착했다. 매표소는 직원들이 모두 퇴근 후였고 성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주민 한분께 관람시간 물어보니 주문들이 살고 있으므로 성문이 닫히는 시간은 없다시며 밤이든 새벽이든 아무 때나 돌아보아도 된다는 답을 들었다. 직원들 없으니 이곳에서 휠체어 빌리기는 가능하지 않다 다리 아픈 언니는 성 밖에 있기로 하고 언니 외 다섯 명은 마을 보다 성곽 위로 올라 걸어보기로 했다. 해진 뒤 침침하니 땅거미 앉고 있었고 조용하고 차분하게 산책을 즐기듯 가벼이 반바퀴를 돌았는데 초가마다 주민들이 살고 있어 저녁찬 만드는 냄새가 새어 나와 초가지붕 속 도란도란 푸근한 느낌까지 보이는 듯했다. 지금 이렇듯 사진을 올리며 생각해 보니 장승만 보고 왔나.. 재미난 장승들 모습만 인상 깊은 기억에 남..
모친 천국 가시기 전에 통장으로 보내드리던 용돈을 동생댁이 모친 위해 사용하고 관리하다가 모친 천국 가신 후에도 같은 금액이 지금까지 자동이체 되고 있는데 남매들 모이면 이 돈으로 먹고 여행 다니고 한다. 외식자리에서도 서로 내겠다 우기지도 않고 너는 왜 한번 사냐 나는 두번 샀다 그런 식의 싸움도 없으니 일부러 핑게거리 만들어서 자주 모여도 마냥 좋다. 5월 여행을 계획했다. 날짜는 동생네 내외에게 맞추고 여행지 선택은 내 담당이 되었다. 숙소까지 예약 마치고 여행 날짜를 기다리는 동안 단체복 사려고 또 모이고 했으니 6명 모두 다 이미 행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출발 예정일 하루전 날 동생에게서 걸려온 전화는 동료가 코로나 걸려서 출근이 어렵게 되어 자신은 직장에 자리를 비울 수 없게 되었다 했다...
나 어릴 적 부친을 부를 때 아부지 아부지 했었다. 친구들은 모두 아빠아빠 라고 부르던데 그 아빠라는 존칭이 왜 그렇게 부럽던지.. 어느 날 아부지께 나도 아빠라고 부르면 안 되느냐 여쭤봤었다. 부친께서는 아빠라는 말은 물 건너온 단어라 하셨다. 아버지께서 기억하고 계시는 선조 때부터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는 양반은 본 적이 없다 하셨다. 내 나이 17살에 아부지 천국가시던 날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아빠라는 존칭으로 선친을 불러본 기억이 없다. 서른 이전에 시집간 딸은 지금도 자신의 아버지를 아빠라고 존칭 한다. 시집가서 본인도 자식을 둔 어른이 되었어도 어쩌다 만나는 친정 부모 앞에서는 어리광 부리고 싶을 터이니 아빠를 아버지라 존칭 바꾸라고 나는 애써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결혼 안 한 작은딸은 서른..
작은딸과 단 둘 여행이 몇 년 만인가.. 손꼽아 보니 9년 만이다. 9년 전에 거제 공곶이를 갔었는데 오늘 우연히 공곶이 할아버지께서 천국 가셨다는 소식을 접한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다음에 올 때는 꼭 셋 같이 오라고... 나에게 진심 담긴 당부 주셨었는데.. 9년간 왜 못 가봤을까... 네~라고 답하고 약속을 못 지킨 옛 시간들이 아쉽다. 23.05.11/ 아침 ( 기장역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메모) 딸이 효녀 인가 어미가 주책인가 여행 나가는 딸 따라왔더니 바다 내음도 장미향 보다 더 향기로운 내가 그동안 몰랐던 또 다른 세상이 있구나!!! 따라나서기를 얼마나 잘했는지...^^* 23.05.11일 (오전 메모 중에서) 기다림도 느림도 즐기는 방법 알려주며 이해의 폭과 상대를 위한 양보와 배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