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블로섬
가족 오락 상자 본문
설날 곶감 선물이 두 곳에서 각 한 상자씩 들어왔었다.
그중 한 상자는 포장이 종이 박스 였지만
다른 한 상자는 나무였는데
뚜껑은 문살까지 섬세하게 작업한 티가 나도록
남다르게 고급이다.
곶감은 냉동고에 넣고
나무상자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꼼꼼히 보아도
흠잡을 데 없을 만큼 단단하고 야무져서
내 마음에는 곶감 보다 상자가 더 마음에 들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버리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그래서 못 버리고 비닐에 감싼 후 선반 위에 올려두며
훗날 넓은 집으로 이사 가면 어느 한쪽 벽면에 이벤트 사진을 붙여
이색 있는 액자로 재활용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난 정월 대보름 날
작은딸은 선반에 올려진 곶감 상자를 내리더니
내가 이것으로 엄마에게 아주 요긴한 보관함을 만들어 주겠노라며
자를 들고 선을 긋고 동그라미를 그려 넣고..
완성되지 않았어도 한눈에 윷말판이라 알겠다.
그러며 나보고 외우고 있는 윷말판 이름을 불러 달란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 모두 다 옳다고는 장담할 수 없으나
유년 시절에는 가족 간에 둘러앉아 공윶말 쓰기 윷놀이를 자주 했으므로
맞던 틀리던 너 외할아버지께서 알려주신 그대로 받아 적어라 했다.
작은딸은 나에게 검색해 보면 다 나오는데
틀린 부분 있는지 확인해 보자 했지만
나는 지역마다 사투리와 억양의 강약이 달라 조금씩 다를 수 있는데
설령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잘 못 되었다 하더라도
나는 내 아버지와의 소중한 추억을 그대로 외우겠다고 고집했다.
윷판이 완성되고 내가 만들어 사용하고 있던 윷말을 꺼내 올려보니
안성맞춤!! 작은딸에게 연신 고맙다고
이 순간은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부자 부럽지 않다고 진심 기뻐했다.
그리고 가족 게임 즐기는 각 상자마다 꺼내 놓고
곶감 상자 안에 아니 이제는 윷판 상자가 된 속으로 가지런히 넣어 봤다.
젠가, 공기놀이, 주사위 놀이
모두 다 내 두 딸들이 유년 시절에 둘이서 사용하던 것이다.
여행용 윷판과 윷가락
이 윷가락은 내 아이들 어릴 때 만들었으니
벌써 30년 넘은 듯하다.
내가 검은 매니큐어를 발랐었고
랑이님이 니스까지 칠해줘서 아직도 반짝 거린다.
천으로 된 윷판은 최근에 큰딸이 내게 여행 할때 사용 하세요 라며 건네줬다.
내 어머니 살아생전 경로당 친구분들과
10원짜리 화토하며 즐기시던 화투가 있고
거실에 여러 명 크게 둘러앉아 윶놀이용 윷가락과
마당용 윶가락 까지...
44년 전에 천국 가신 선친께서 다듬어 주신 윷가락이
남동생 집에도 있고 내게도 있다.
언니집에 있는 윷가락은 모친께서 다듬어 사용하시던 것이지 싶은데
다음에 언니집에 가면 확인해 봐야겠다.
낫낫이 쏟기거나 흩어지지 않도록
모두 뚜껑을 가지런히 덮어 마지막 곶감상자 두껑도 덮었다.
상주곶감이라는 글이 적혔던 곳에 "가족오락상자"라는 글씨를 적어 주겠노라
작은딸의 약속인데 완성 후에 어떤 분위기 될까 은근 기대 된다.
쉽게 꺼내 사용할 수 있도록
거실 소파 아래로 쏙 밀어 넣었다.
손녀가 오면 젠가 놀이를 즐겨했었는데
이제는 윷놀이를 좋아한다니
이다음 손녀가 오면 이 상자 하나만 뚜껑 열어
어떤 놀이를 할까? 물어보련다.
나도 이 나이까지 내 아버지 어머니 추억을 간직하며 살고 있으니
언젠가 세월이 한 참 더 흘러서.. 나 없는 세월에 닿으면
이 상자는 큰딸네로 가 있을까.. 작은딸 네로 가게 될까..
내 두 딸들도 나처럼 분명 소중한 추억이라 여기며
버리지 않을 것이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23.02.05일
'♣ 마음뜨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 (19) | 2023.03.17 |
---|---|
봄 소식 같은 안부 (21) | 2023.03.12 |
믿음과 의심 사이 (10) | 2023.02.17 |
충전 (21) | 2023.02.14 |
630의 후유증 (10) | 2023.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