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블로섬
불시착 본문
새벽부터 서둘러 랑님 정기검진 받으러 간 날
금식하고 갔으니 검사부터 받았고
아침도 점심도 아닌 어중간한 첫끼를 사 먹었다.
진료 대기 시간까지 두어 시간의 공백이 있다.
딱히 할일 없으니 천천히 병원 정원으로 나왔다.
옥상 화단에서부터 아래로 늘어진 영춘화를 찾아가니
이미 만개를 지나 있다.
어쩌면 지금 즘 만개했을 거라는 상상과 기대가 컸었는데 아쉽다.
산수유 꽃도 벌써 피기시작하는 모습은 더 당황스럽다.
봄의 전령사는 남쪽에서 출발하여
내 사는 지방을 건너뛰고 서울에 먼저 닿은 듯하다.
아마도 차량 열기로 봄이 더 빠른 걸까? 생각하며
내성천 뚝길로 향했다.
뚝길에도 개나리가 피기 시작했고 쑥도 제법 올라와 있으니..
어째 서울의 봄이 내 복숭아 밭보다 더 빠른 것 같다. 는 대화를 하며
둘이 천천히 걷고 있는데
내성천이 흐르는 물가 저만치 장꿩 한 마리가 보인다.
내가 잘못 보았는가 의심에 폰카 30배 줌 당겨 찍어서
확대하여 보니 아주 멋스러운 장꿩이 확실하다.
어찌하여 이 도심에 장꿩이 홀로...?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아도 암꿩은 보이지 않고
벗들도 없이..
딱히 먹이를 찾는 것 같지도 않고
딱히 돌아갈 곳도 없는 듯한 걸음...
내 눈에 장꿩은 낯선 도시에 불시착 한 모습이 확실한 듯싶다.
주변에 수십 마리 까치들이 앙상한 나뭇가지 위로
자신들만의 둥지 만드느라 잔가지 물고 바쁘게 나르는 모습과
너무도 다른, 저 홀로 느릿느릿 요염한 걸음을 걷고 있는 장끼가
왠지 어울리지 않고 어색하다.
개나리가 피기 시작하는 강둑길을 한참 더 걷다가
장꿩의 자취가 궁금하여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 봤으나
꿩은 그저 그 자리 이탈하지 않고 여전히 이 시간의 나 만큼이나 여유롭다.
본시 자기 집 앞마당이었다는 듯..
진료를 받았다.
검사 결과 이제는 안심하고 생활하시라 말씀해 주시는
담당 의사샘 표정이 밝아 무척이나 고마웠다.
6개월분의 약처방을 받아 들고 병원을 나왔다.
24.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