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블로섬
도둑같이 다녀가다 본문
새벽 4시 30분
복숭아 밭에 오르려 거실로 나오니
다녀가겠다 연락 없었던 큰 딸네 가족이
거실 바닥에 깔아둔 대자리 위로 셋 나란히 누워 자고 있다.
예고 없던 선물을 받아 안은 듯 순간 당황하며 놀랐다.
에어켠을 언제부터 켜 놓았을까
거실은 냉기 가득한 것이...
나에겐 좀 썰렁하여 행여 춥지 않을까
에어컨 꺼주고 싶지만 단잠 깨울까 참았다.
깨워서 얼굴도 보고 싶고
사랑스러운 손녀 손도 만져 보고 싶고 했으나..
요즘 단 5분의 시간도 허비할 수 없는 내 현실에 쫓겨
까치발로 살금살금 도망치듯 현관을 나왔는데
지난밤 내가 택배 송장 번호 일일이 보내 놓고
누락된 것은 없었는지 체크하며
다음날 주문서까지 확인하고 자느라
분명 자정 넘어 잠들었는데
이 반가운 손님들은 아마도 밤길 달려왔나 보다.
찜통 속 같은 더위에도
웬 종일 마음이 날아 갈듯 가볍고
빨리 마치고 집에 가면 예쁜 손녀가 와 있다는 설렘으로
일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트럭 짐칸에 택배 보낼 복숭아 박스와
배달 다닐 복숭아 박스들을 분리하여 싣고 밭에서 출발하기 전
남편은 밭둑을 가파르게 질러 뛰어올라
수박 두덩이 따서 양쪽 어깨 겨드랑이 아래 품고
올라갔던 지름길로 뛰어내려와 복숭아 바구니 속에 담는다.
내가 아직 덜 익었을 텐데...
했더니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수박 주인이 왔으니까~" 했다.

택배 보내고
시내 배달 마치고
밤 10시경
지친 몸으로 수박 두덩이 안고 엘리베이터 타고서도
몸은 뛰어오르고 싶었다.
현관 앞에 쪼록 ~ 순번 없이 일렬로 서서
"이제 오세요~~~오 수고 많았어요~~~ ~"합창을 해 주는데
환영하듯 반겨주는 내 꽃 같은 사랑들...
세상 어느 재벌이 이 순간의 나보다 더 배부르랴 ~
그 누구도 부러울 것이 없었다.

샤워하고 나오니 식탁에 차려진 저녁 밥상
저녁 밥상이라기보다
사랑 밥상이란 단어가 어울릴 그런 풍경이다.
손녀는 내게 이 두 개 다 모두 자기 수박이 맞냐고 물어본다.
이른 봄에 모종 사서 심을 때부터
이 수박은 손녀 몫이라 했었고
노란 꽃이 폈던 날 꽃 사진 찍어
너 몫의 수박꽃이 피었노라 내가 알려 줬었으며
첫 열매가 계란 크기보다 작게 달렸던 날에도
사진에 담아 가족단톡방에 올리며 손녀의 수박이라 했었기에
당연 두 덩이 다 손녀 몫이라 답해 줬다.


한 덩이는 아빠차에 실어 두었다가 서울가서 먹으라 하고
한덩이는 잘랐더니
수박 속이 연분홍빛이다 ㅎㅎㅎ
하얀 씨앗의 연분홍 수박은 처음 본다는 손녀
그럼에도 삼각형 수박을 양손으로 들고
"맛나요 ~ 맛나요~ " 하는데
진심이었을까??
땀 흘린 외할아버지께 예의 담긴 인사였을까 ㅎㅎㅎㅎ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손녀가
이모 책꽂이에서 색연필 몽땅 꺼내 놓고 무얼 그리려나 했더니
동그란 메모지에 복숭아 하나를 탐스럽게도 그려준다.
내가 스타일러 문짝에 붙여 놓았다.
그 밤도 쉽게 자정이 넘었다.
다음 날 새벽에 우리는 또 복숭아 밭에 올라야 하므로
서울 가족들 새벽잠 깨우지 않으려고
셋을 안방에서 자그라 했었기에
새벽에 작업복 입고 과원으로 오르기전 안방문 살짝 열어보니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세 사람 그 사랑스러움이
내 가슴 가득 행복으로 녹아든다.
그리고 그날 정오 무렵
복숭아 여러 상자 주문하시는 분으로부터
눈에 익은 큰 딸이름이 날아들었는데
본인은 내 큰딸과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소개와 함께
입금은 큰딸 통장으로 하셨다고????

그렇게 고객님이랑 한바탕 웃음 묻어나는 문자를 주고받으며
더위를 이기기도 했는데
그 밤
택배 보내고 배달하고 집 도착하니
거실이 조용 ~~~~~~~~~하다.
적막강산이란 표현이 맞을까?
이방 저 방 다 둘러보아도 어젯밤 손님들이 안 보인다.
소중히 아끼던 것들을 한순간에 다 잃어버린 듯 허전하고
깨지 말았어야 할 꿈인 듯 아쉽고...
전화를 걸었다.
"외할머니 ~~~~~~~~~~" 외쳐주는 손녀.
내가 어디냐? 물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바쁘시다고
엄마가 피해주자 했단다.
하여 지금은 타지방에서 물놀이 중이라나...
내가 손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허전한 것이... 모두 다 도둑맞은 마음이라고....ㅠ
그래서 외할머니는 지금 멍하니 서 있기만 한다고...
25.07.27~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