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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블로섬

담쟁이 넝쿨 본문

♣ 마음뜨락

담쟁이 넝쿨

블로섬 2024. 11. 3. 16:22

 
퇴근길에 최근에 이웃이 된 그녀를 내 집으로 불렀다.
 
와서 배 좀 가져갈래?
 
그녀가 내게로 오며 자신의 덩치 만한 크기의 휴지를 들고 왔다.
 
같이 이사 들어왔는데
같은 처지에 이런 걸 왜 들고 오는지 순간 당황스러웠다.
 
휴지를 들고 다용도실에 넣으러 가며
이러면 나는 또 무얼 들고 가 저 벗의 입주 선물을 해야 할까...
세재? 난꽃이 핀 화분? 공기를 맑게 해 준다는 실내 정화 식물??
짧은 순간에 여러 생각이 겹쳤다.
 

 
 
 
이사하느라 과원에 스무 그루가 넘는 배나무에 
배 봉지를 제때 열지 못해
올해는 배가 잘고 단맛이 작다.
 
그럼에도 달린 배는 다 따야 했으므로
서리 내리기 전에 몇 박스 따 놓았지만 
아직도 배 봉지를 벗기지 못한 상태로 새로 사들인 김치 냉장고
김치통 속으로 꽉꽉 차 있다.
 
여러 개 만져보아 그중 큰 것들을 따로 담아
비닐봉지에 한 묶음 담아 놓으며 "집에 갈 때 들고 가서 갈아 얼려두고
양념으로 사용해라 ~" 했다.
 
자잘한 배들을 담아 주려니 마음 편치 않았지만 
그동안 나눈 인정으로 나를 오해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은
믿음이 크다.
 
그리고 배 두 개는 깎아 놓고 
너도 먹고 나도 먹고...
 
그동안 둘 다 이사하며 바빠서 만나지 못했던 기간에
여러 안부들을 나누었다.
 
나는 주로 이사하며
사랑받은 마음 편한 온화한 소식들을 전했고
 
그녀는 내게.... 주절주절... 하소연 같은
한숨 섞인 얘기들을 내리며
가끔씩 감정 조절을 못해 눈물도 훌쩍이고 했다.
 
마음 여리고 순한 사람들이 흔히 겪는 마음 상처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상처받은 서운한 감정까지..
 
나는 알 것 같다.
사랑 나눔을 원만하게 하지 못해서
받고 싶은 사랑까지 스스로 포기해야 하는 자신이 되기까지
그 아픔을...
 
그녀가 돌아가기 전에 내가 그녀에게 말해 주길
사랑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내게 서운하게 할 때는 
당신이 내게 사랑 주지 않았음에 
나는 당신에게 사랑의 빚진 자 되지 않아 다행입니다.라고 주문처럼 외라 
했는데..
 
그 어설픈 위로가 적절했는지 나도 모르겠다.ㅠ
 
시내버스 타고 출근하려 걸어오는 길목에
차가운 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넝쿨이
어제보다 좀 더 물들어 그 색이 업그레이드 됐다. 
 
왠지 어젯밤 그녀가 내게 들려주었던 마음 같아
쪼그리고 앉아서 카메라에 담으며
 
"좀 더 힘을 내봐 ~ 
 일 년 뒤 이 담장에는 네가 뿌리내린 온기로 꽉 차게 될 게야~"라는
나 홀로 그녀에게 보내는 기도라고 중얼거렸다.
 
24.11.03/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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