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아름다운 블로섬

가을이 무겁게 익어간다. 본문

카테고리 없음

가을이 무겁게 익어간다.

블로섬 2022. 10. 3. 11:29


오늘 9월을 이대로 보내면 서운 할 것 같다고
점심시간 이용해서 꽃 길이나 걸어 보자던
친구를 태우고 외곽으로 나갔다.



저만치 사람이 살고 있을까 의문스러운 집
기울어진 담장 기대어 세월에 낡은 의자 내어 놓고
할머니 한분 앉아 계신다.

"할머니 여기 떨어진 대추 한 알 주워 먹어도 되나요? " 내가 크게 소리쳤더니

"주워 먹되 따 먹지는 마~" 메아리가 가늘게 돌아왔다.

대추 두 알, 호두 두 알 주워 들고 할머니께 다가가 손바닥 펼쳐 보여주며
" 할머니 이만큼 주웠어요. 저 먹어도 될까요?" 물었다.

대추는 따서 6남매 나눠 줄 것이지만
호두는 새가 먹고 남은 작은 것들 뿐이라
먹을 것이 있으려나 하신다.ㅎㅎ

한적한 시골... 낡은 집 한 채뿐인 곳에서
주위에 아무도 없고 친구와 내가
그때부터 처음 만난 할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6남매 나눠 주겠다는 대추가 엮어준 대화의 주제는
할머니 젊어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고달프던 농사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지만

낯선 사람을 경계해야 하는 사회.
코로나라는 전염병 탓에 가까이 다가가 건네는 인사조차 예의에 벗어나는 현실에서

세월을 거슬러 아주 오래전 풍경 속처럼
처음 만난 사람들이 자연스레 나누는 대화가 지금 생각해보니 더없이 정스러웠다.싶다.

금방 돌아와야지 했던 계획은 그 할머니 만나
옛이야기 나누다 한 시간은 더 훌쩍 지체됐다.

시간 확인하고 내가 일어서며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했더니
할머니께서 잠시 기다리라 하시고
낮 들고 대문 앞 텃밭에서 싱싱한 상추 대를 싹둑 잘라 주신다.

친구도 나도 부케처럼 받아 들었는데
고마운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얼떨결에 나온 말은

처음 보는 낯선 여자들을 경계하지 않으시고
이렇듯 후한 대접을 해 주시는 까닭을 물었다.

"요즘 여기 꽃 보러 모여드는 대부분 사람들은 물어보도 안 하고 대추와 밤을 주머니에 따 담기 바쁜데
대추 한 알 주워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이제까지 우리뿐이었단다.

그래서 낯선 우리를 경계하지 않으셨다고..
뭐든 더 주고 싶은데..
요즘은 농사짓지 않으니
더는 줄게 없다 아쉬워하신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신 꾸벅꾸벅 인사하며
쉬 돌아서지 못하는 우리에게 할머니께서는

"대추라도 더 따 주랴???" 하신다.

팔을 크게 흔들어 아니요 아니요 ~~~ 거절하며
뛰듯 빠른 뒷걸음으로 할머니와 멀어졌다.

혹시 다음에 이 길을 다시 가는 일이 생긴다면
따스한 찐빵이라도 사다 드려야겠다.

22.09.30일 /점심

Comments